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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니고데모, "한 밤중에 길을 묻다"

한 밤중에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예수님을 몰래 찾아와 길을 물은 이가 있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니고데모가 말문을 열자 두 사람 사이에 알쏭달쏭한 선문답이 오간다. 예수님은 느닷없이 거듭남을 화두로 삼으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권투의 잽처럼 치고 들어온 예수님의 말씀에 적잖이 당황한 니고데모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생뚱맞은 질문 하나를 꺼낸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가리키시는 손가락의 방향과 니고데모의 손가락이 어긋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어긋났던 니고데모의 손가락은 서서히 예수님의 손가락의 방향을 찾아가는 흔적을 남긴다. 한밤중 대담 이후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만 두 번 더 등장한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쟁론이 일어났을 때 니고데모는 숨겨진 제자로서 여전히 망설이면서 등장하여 예수님을 변호한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후 그의 시신을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거두어 장사지내기 위하여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등장한다. 제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서서히 노출하면서 어두움의 영역에서 빛의 영역으로 이전해 가는 그의 영적 노정(路程)을 그려볼 수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하여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그 날 이후 빛 된 진리로 가는 발걸음을 다소 슬로우 모션으로 쉬지 않고 가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동족들의 거센 요청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는 자기모순을 니고데모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외침이 니고데모의 귓전을 때린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양수(羊水)가 터지면서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태어나는 생명의 신비와 더불어 성령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또 한 번의 생명현상은 신비이다. 땅(흙)에서 태어나서 다시 성령의 사람으로서 위(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 그것이 거듭난 생명의 신비인 것이다. 그 날 밤 오간 선문답이 이러한 생명 탄생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이 될 줄을 니고데모는 알았을까?

2009-09-29

[성서인물열전] 디나, 성서속 첫 '성폭력 희생자'

역사적으로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가장 끔찍한 폭력 가운데 하나는 성적 폭력과 유린이다. 2차 세계대전 시 독일 병사들은 유럽 전역에서 점령지의 여성들을 겁탈하였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 병사들은 독일 여성들을 겁탈하였다. 최근 아프리카 내전 중 종족 간 자행된 조직적인 강간은 타종족에 대한 증오와 폭력이 낳은 악순환의 결과이다. 디나의 강간 사건은 성서 속 최초의 성폭력 사건이며 나아가 그 사건으로 인하여 한 일족의 살해와 그 도시의 유린이야기로 전개된 폭력의 악순환이 낳은 생생한 비극적 이야기이다.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의 단초가 된 것은 족장 야곱의 외동딸 디나의 겁탈 사건이었다. 디나는 주변 지역 여자들을 보러 나들이 갔다가 그 지역 족장의 아들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사건은 묘하게 흘러 세겜은 디나를 강간 한 후 실제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야곱에게 혼인을 허락해 달라고 청한다. 세겜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하몰까지 나서서 디나에게 행한 잘못에 대해 야곱과 그의 12아들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야곱의 12아들들은 혼인이 성사되려면 세겜과 그의 모든 부족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그들은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인 할례를 구실삼아 야곱의 12아들들이 조직적인 폭력과 살해를 획책하고 있음을 세겜 일가는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할례로 인한 쓰라린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세겜 일가의 남자들은 힘 한 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야곱의 아들인 시므온과 레위에 의해 모조리 살해됐다. 디나의 강간은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세겜 일가의 멸절로 치닫는 끔찍한 폭력을 낳게 되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피해당사자인 디나는 일언반구의 입장 표명 없이 줄곧 침묵을 지킨다. 디나의 침묵은 성폭력으로 인하여 자신이 경험한 정신적 외상(外傷)과 더불어 자신이 빌미가 된 세겜 일가의 멸절로 인한 충격 때문은 아닐까? 폭력과 보복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그 고리 안에 묶인 모든 이들의 운명은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고 함께 몰락하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과도 같다. 폭력의 악순환과 보복의 대물림을 끊을 때 이 땅에서 천국은 거반 완성된 것이다.

2009-09-22

[성서인물열전] 스테반, 복음외친 '첫 순교자'

스테반은 유대교 본산지인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복음을 외치다 그를 둘러싼 유대 동족들이 던진 돌에 맞아 현장에서 죽었다. 죽기 전에 그가 남긴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에 하신 말씀을 연상케 한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조상들의 유전과 전통에 대해 강한 민족적 자긍심을 지녔지만 허울뿐인 동족들을 향해 스테반은 거침없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사람들"이라면서 그들의 완악함을 고발하였다. 유대교를 떠받치는 두 기둥에 해당되는 성전과 율법을 폄하하는 것으로 비춰진 스테반의 설교에 분기탱천한 그들은 그를 석형하였다. 스테반은 이방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오순절 성령강림후 사도들의 가르침에 크게 변화를 받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무(專務)하기 위해 그들이 이제까지 해왔던 구제와 봉사 사역을 맡길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집사를 선출했으니 그들 가운데 한 명이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스테반이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이방지역에서 생활하다가 최근 예루살렘으로 역이민 온 사람들이 헬라파 유대인 크리스천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신학적 정서는 예루살렘 본토박이 유대인 크리스천들과는 맥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헬라파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대표자였던 스테반의 설교는 동족들의 분노를 사게 되어 결국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동족들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하면서 그들이 십자가에 처형시킨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거침없이 설파했던 스테반 같은 이들의 기개와 열정과 희생은 사실 초대교회를 생존케 한 맥박과도 같았다. 스테반의 선포로 드러난 자신들의 치부와 죄악을 은폐하기 위하여 유대인 동족들은 돌로 쳐서 그의 입을 막았지만 오히려 그 사건은 복음이 들불처럼 번지는 서곡이 되었다. 스테반 순교의 후일담은 그의 순교현장에서 그것을 목도한 바울의 회심과 선교이야기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한 희생 속에 담긴 그 의미는 때로 우리 눈에 포착되지 않은 신비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2009-09-15

[성서인물열전] 요나, 콤플렉스 걸린 예언자

'요나 콤플렉스'란 말이 있다. 어머니 뱃속 시절을 그리워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퇴행적 증상을 일컫는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일종의 정신적인 '광장공포증'이 아니겠는가? 이런 장애가 있는 이들은 넓디넓은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내리신 세상 바깥으로 나가라는 명령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그야말로 대책 없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자신의 철옹성 같은 의식 속에 갇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콤플렉스로 인해 2500년 전부터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인물이 있으니 다름 아닌 요나이다. 요나는 니느웨(아시리아의 수도)로 가서 그 도시가 죄악으로 가득 차 징벌 받을 것임을 예언하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그 도시의 멸망을 원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채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된다. 그러나 예기치 않던 거센 태풍이 배를 덮치고 그로 인해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큰 물고기에 삼켜진 채 사흘 밤낮을 그 속에서 지내다가 기도를 올린 후 뭍으로 토해져 마지못해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억지춘향이로 전한 그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의 왕과 모든 백성이 회개하게 되었으니 당시 요나의 표정이 자못 궁금하다. 그 일 이후 요나의 행동이 참 가관이다. 요나는 그 도시 밖으로 가서 초막을 짓고 그늘 아래 앉아서 그 도시가 파멸될 것을 기다린다. 그때 그늘을 드리워 요나가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해 준 박넝쿨이 큰 벌레가 쏠아 먹어 죽게 된다. 그 박넝쿨을 위해 어떤 수고조차 하지 않았던 요나가 그것이 죽은 데 대해 비통해 하며 아까워하자 하나님은 이런 말씀으로 요나를 일갈(一喝)하신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져 버릴 박넝쿨 잎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1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육축들의 생명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정하게 대하는 그 완악함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민족 인종 이념 관습 교리라는 박넝쿨은 보면서도 종교의 본질인 '사랑'을 외면할 때마다 우리 자신이 영적인 '요나 콤플렉스'에 걸려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진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겠다.

2009-09-08

[성서인물열전] 유니아, 최초의 여성 사도로 불려

신약성서 한 구절 속에 오래 동안 잊혀진 여성 '사도'가 있었다면 남성 사도로 맥을 이어 온 장구한 교회역사에 파란을 일으키게 될 것인가? 로마서 16장 7절에 최초의 여성 사도로 불린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유니아'이다. 바울이 일면식도 없는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그곳 성도들의 안녕을 묻는 문안의 글 가운데 성서에서 단 한 번 등장 하는 이 여인의 이름을 언급해 놓고 있다.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얼핏 지나칠 수 있는 이 한 구절에서 우리는 '유니아'에 대한 몇 가지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주후 1세기 교회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안드로니고라는 한 남자의 아내였다는 점이다. 그 단순한 사실보다 유니아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사도 바울과의 관련성이다. 유니아는 바울과는 친척지간이었으며 그보다 먼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과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던 여인이었다는 점이다. 족보에 이름 한 줄조차 남기지 않고서 역사 속으로 황망히 사라져 버린 당시 여인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이러한 정보만으로도 유니아를 다시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보다도 우리를 적잖이 당황케 하는 것은 유니아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라는 표현이다. 이 구절의 헬라어 원문의 정확한 번역은 "그들은 사도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들이었다"는 의미인데 유니아가 사도들에게 귀중히 여김을 받았다는 의미를 넘어서 그녀가 사도였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점은 초대교회 안에서의 여사도적 정체성의 발견이라 할 수 있고 이것만으로도 남성 사도의 독주(獨走)로만 점철된 교회역사와 전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구절이라 하겠다. 기독교회가 척박한 환경에서 복음의 새싹을 틔운 1세기에 이러한 여성 사도의 어렴풋한 흔적을 발견하는 기쁨은 새삼스럽다. 과거에 비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현저한 이 때 유니아와 같은 헌신적이고 지도력을 갖춘 여성들의 활동과 그러한 여성인력의 활용으로 이민교회와 사회 현장이 더욱 윤택해 질 수 있기를 기대해봄직 하지 않은가?

2009-09-01

[성서인물열전] 도마, 의심으로 믿은 순교자

최근 신약학계에서는 도마복음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도마복음은 신약성서에 포함되지 않은 많은 복음서 가운데 하나로 주후 2세기 기독교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영지주의의 문헌에 속한다. 이 복음서에서는 도마가 가장 위대한 사도로 묘사되고 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는 예수께 바칠 수 있는 최상의 고백을 한 것으로 묘사된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베드로와 비교해 보면 기실 그렇다. 이러한 도마의 고차원적 신앙고백과는 대조되는 그의 닉네임은 '의심하는 도마'인데 그것은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그의 언행에서 유래된 것이다. 요한복음 20장에 따르면 도마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바로 그 현장에 마침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전한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그는 냉철한 이성적 잣대로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진실게임을 풀려고 하였다.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서도 다른 인식과 제각각의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아가 단순히 우리의 오감(五感)에 기초한 인식의 차원에서 포착되지 않은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믿음은 인식과 경험을 때로 넘어선다. 도마 이야기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종결된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런 점에서 도마는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단계에 오르지 못한 믿음의 날개를 반쯤 접은 이들을 대변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의심하는' 도마는 의심의 안개 안에 갇혀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멀리 인도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마의 생애가 보여주는 것처럼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때로 진리를 향한 의심과 진지한 회의는 믿음의 열매를 알차게 영글게 하는 자연스런 과정인 것이다. 그러기에 짚어가며 믿으려 하는 이들을 너무 타박하지 말기를.

2009-08-18

[성서인물열전] 에스더, 민족을 구한 믿음의 여인

2006년 출시된 고대 페르시아(현재 이란)를 배경으로 펼쳐진 흥미진진한 모험이야기인 영화 '왕과의 하룻밤'은 구약성서의 에스더서를 기본 줄거리로 하여 제작되어 박스오피스 9위에 랭크되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에스더서의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에스더의 사촌오빠이자 한때 보호자였던 모르드개가 당시 실권자였던 하만에게 경배하는 것을 거부하자 하만은 이를 계기로 모든 유대인들을 멸절시키기로 작정한다. 이를 위해 하만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왕의 법률은 무시한다고 하는 거짓말로 아하수에로 왕을 격노케 하여 유대인들을 겨냥한 인종청소라는 무서운 계략으로 그를 끌어 들인다. 하만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은을 받고서 그의 간계에 놀아난 아하수에로 왕은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라고 조서를 내린다. 이러한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적 위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왕이 자신이 내린 조서를 스스로 철회하는 것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하수에로 왕의 유대인 왕후였던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도움을 받아 왕명을 철회케 하고 하만이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을 학살하려고 했던 음모를 좌절시킨다. 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해 준비하였던 바로 그 교수대에서 하만 자신이 처형당하였고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던 원수들이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에스더서 이야기는 거듭되는 반전의 이야기로 읽는 이로 하여금 숨죽이게 한다. 에스더서 이야기의 압권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고서 왕명 없이 왕에게 나아가는 에스더의 신앙적 결단과 그로 인한 극적 반전이다. 왕명이 없는 한 왕후라 할지라도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는데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비장한 각오로 삼일 동안 금식한 후 아하수에로에게 나아가 임박한 죽음으로부터 민족을 구하게 된다. 이러한 민족적 구원과 승리의 동력은 자신이 왕후로 간택된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의 때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이라고 하는 에스더의 불굴의 믿음과 비장한 소명의식이었다. 죽어야 산다고 하는 예수님의 역설의 말씀이 2500년 전 에스더의 이야기에서도 공명되고 있으니 에스더는 이미 그 진리를 삶으로 보여준 셈이 된다.

2009-08-11

[성서인물열전] 베드로, 교회를 반석에 올린 '믿음의 거인'

거스틴은 베드로와 요한을 비교하여 "요한은 예수가 사랑한 제자이고 베드로는 예수를 사랑한 제자이다"라고 말했다. 그 표현대로 베드로는 사랑을 바칠 대상을 만났을 때 그 자리에서 생업과 가족을 포기하고 따를 만큼 격정적인 인물이었다. 베드로는 기후 변화가 심하였던 갈릴리 호수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누군가 '갈릴리 호수 같은 사람'이라 그를 평하였다. 물 위를 걸어서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물 위 걷기를 시도하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졌던 바람 앞에 갈대와 같은 사도였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더할 나위없는 최상의 고백의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차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던 성급하고 경솔한 인물이었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큰 소리쳤지만 이내 돌아서서 그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한 행동보다 말이 앞섰던 제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베드로의 요철 닮은 신앙 모습은 연약한 우리 속에도 있는 변화무쌍한 모습이 아니던가? 실패하지 않은 채 성숙한 영성에 도달한 사람은 없기에 베드로는 이러한 가슴시린 실패의 과정과 눈물 젖은 고뇌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심지'가 있었다. 그 심지가 있었기에 초대교회의 '반석'같은 수장이 될 수 있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명하셨다.그의 명예를 회복해 주고 실패한 자리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교회의 수장으로 삼아 주시는 속 깊은 주님의 배려임을 베드로는 알았을 것이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 교회와 바울이 주도했던 이방 교회 사이에서 주로 율법과 관련된 여러 주요 사안에 대해 조정자로서 그 둘 사이의 교량역할을 주도했던 교회 혼란기에 교회의 토대를 세웠던 믿음의 거인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베드로는 로마로 가서 활발한 선교 활동을 하다가 폭군 황제였던 네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었다고 한다. 흔들리는 갈대에서 이제는 전설이 된 그의 이름 게바('반석')의 고백은 우리가 서있는 신앙의 터전이 되었다.

2009-08-04

[성서인물열전] 다윗, 너무나 인간적인 지도자

성서를 통틀어 다윗만큼 팔방미인이었던 인물이 있었을까? 소년 시절 그는 양치는 목동으로 시와 예술에 재능이 많았는데 특히 그의 하프 켜는 솜씨는 특출하여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의 궁정에 불려가 사울이 악령에 시달릴 때마다 그를 진정시킬 정도로 뛰어났다. 그뿐인가 팔레스타인의 6척 장수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린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이 사건으로 다윗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군사 지도자의 면모를 일찌감치 대내외적으로 알리게 된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치솟아 오르는 그의 명성과 인기를 시기한 사울을 피해 망명의 길에 올랐으니 그처럼 일희일비를 반복했던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인물도 없을 것이다. 다윗은 사울 왕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12지파를 결속하여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통일 왕국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는 수많은 전투를 통하여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그의 통합왕국은 날로 융성해져 왕국의 황금시대를 이룩하게 된다. 더욱이 하나님 현존의 상징인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옴으로써 예루살렘을 다윗의 도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도시로 만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윗은 이스라엘에 정치적 종교적 안정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 가지 결정적인 잘못을 범함으로써 그 이후 그의 왕국에 짙은 암운을 드리운다. 그는 자신의 왕국을 경영하기 위하여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조사의 목적과 동기가 불순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 또 하나는 밧세바를 취하기 위하여 야비한 음모를 꾸며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장의 최전선에 보내어 죽게 한다. 그는 큰 죄를 범하여 흑암의 시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지만 어린 시절 목동으로서 자연 속에서 만난 삼라만상의 목자 되신 하나님과 일평생 동행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변함없는 믿음과 충성 그리고 자신의 죄악 앞에서 처절히 눈물 뿌리는 영성이 있었기에 그는 오고 오는 역사 속에서 가장 칭송받는 인물이 되었다. 권력 (혹은 교권) 뒤에 철저히 자기를 포장하거나 숨기는 지도자들이 넘쳐나는 이 때 다윗처럼 자신의 과오 때문에 그리고 연민으로 눈물 흘리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지도자가 한결 그립다.

2009-07-28

[성서인물열전] 드보라, 철기시대의 우먼파워

가부장적 지중해 문화권에 속한 고대 이스라엘은 지금 우리의 기준에서 보면 성차별이 상당히 심했다. 이러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단연 돋보이는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는 다름 아닌 드보라이다. 예언자이자 판관(사사)이었던 드보라는 영국과 프랑스간 백년전쟁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프랑스를 영국으로부터 구해낸 전설적인 여전사 잔 다르크에 비견된다. 판관은 가나안 땅 정착으로부터 왕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로서 평화 시에는 백성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해 주다가 이민족으로부터 외적 공격이나 지배를 당할 때에는 이스라엘을 구하는 군사 지도자들을 일컫는다. 판관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었던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어머니'라는 표현이 뜻하는 것처럼 여성 지도자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찬사와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드보라에게서 위기에 처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어머니의 강인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드보라야 떨쳐 일어나라. 일어나라. 떨쳐 일어나라 일어나 노래를 불러라." 이 내용은 고대 히브리 시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드보라와 바락의 시(사사기 5장)의 일부이다. 이 시를 통해 드보라는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을 한다. 드보라는 군대지휘관인 동료 바락을 도와 이스라엘의 여행자와 주민을 괴롭히는 가나안 군대와 싸워서 승리하였다. 강력한 철병거도 비에 젖어 질척거리는 땅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억수 같은 비로 물이 불어난 키손 강은 도망치는 가나안 병사들을 휩쓸어갔다. 이 비상한 전략이 드보라에게서 나왔으니 그녀는 뛰어난 군사적 전략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드보라는 정치를 할 때에는 냉정하고 공의로웠으며 재판을 할 때에는 공정한 판관이었고 전쟁을 통솔할 때에는 단호하고 엄격한 전략가였다. 거기에 문학적 감각이 뛰어난 시인이었으니 드보라는 고대 사회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여인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도 소심하여 자신 뒤로 숨으려 하는 바락을 격려하여 전면에 내세우고 오히려 자신은 뒤로 물러서는 섬세함과 겸손함까지 겸비했으니 드보라는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아무튼 드보라는 막강한 가나안을 제압했던 사사시대의 우먼 파워였다.

2009-07-21

[성서인물열전] 노아, 하나님을 늘 기억했던 노아

나치의 손아귀에서 유대인을 구하는 실화를 다룬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토머스 케닐리의 '쉰들러의 방주'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방주는 파멸로부터 벗어난 장소로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는 천국의 희망을 상징하기도 했다. 방주하면 제 2의 아담으로서 인류의 새로운 아버지가 된 노아의 방주가 단연 돋보인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 인류의 죄는 점점 커지고 타락한 세상이 되었다.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하여 하나님은 인간 전부를 파멸시키고 새로 시작하기로 결심하셨다. 그러나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자였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 제작을 명령하셨고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후에야 홍수 심판이 있었으니 강산이 12번 바뀌는 그러한 오랜 시간도 노아의 믿음만은 퇴색시키지 못하였다. 노아가 주위 사람들의 수많은 조소와 냉대를 경험하면서도 묵묵히 방주를 예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일상사이다.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재미에 도취되어서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기에 그들은 심판 받았다. 노아가 의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일상사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늘 기억하며 살았기 때문이리라. 그 뿐 아니라 방주의 설계 또한 하나님의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방주는 배가 아니었으므로 엔진이나 노나 키 같은 항해 장치도 없는 마치 거대한 생명보호소 같았다. 어디에 상륙할지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비가 40일 동안이나 밤낮으로 내려 인류 전체가 수장 당하는 동안 방주의 동력은 노아의 믿음이었다. 믿음은 역설이라고 했던가? 120년간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만든 노아는 믿음의 역설을 보여준 좋은 예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현재화하며 묵묵히 자신의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삶이 진정한 믿음의 삶이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심판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밑동 잘린 그루터기에서 새 싹을 트게 하시는 구원과 희망의 이야기이도 하다.

2009-07-14

[성서인물열전] 삼손, 죽어서 산 '진짜 영웅'

미쳐 날뛰는 사자의 입을 '양 새끼 찢듯' 두 손으로 찢어 숨통을 끊어 버리고 가자(Gaza) 성문을 뽑아버린 괴력의 소유자.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살해한 이스라엘 전사. 그러나 한 여인의 간교에 빠져 자신의 힘의 원천을 누설한 후 그 힘이 거세당하고 두 눈 알이 뽑힌 채 노예가 되고만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남자. 결국 적지의 신전 두 기둥을 뽑아 엎음으로써 수많은 적군과 함께 장렬한 죽음을 택한 비극의 주인공. 누구의 이력인가? 그리스 신화의 영웅 가운데 한 명인 헤라클레스와 늘 함께 비교 회자되는 삼손의 이력이다. 삼손 이야기는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지구인 가자를 무대로 펼쳐진다. 삼손은 약 40년간 이스라엘이 그 숙적인 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암울한 시대에 전설적인 전사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위해 성별된 나실인이었지만 탈선하여 정신적 나약함과 윤리적 결함을 지닌 그러기에 전형적 영웅의 모습에서 동떨어진 삶의 행로를 걸어간다. 삼손은 여색을 좋아하며 때로 초인적인 힘을 사용하여 무차별적으로 살육한다. 불레셋 출신 기생 데릴라의 간교에 넘어가 발설해서는 안 되는 자신의 힘의 원천이 머리카락에 있음을 누설함으로써 결국 그의 생애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사실 그의 힘의 원천은 머리카락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서약에 있었다. 삼손은 자신이 지닌 인간적 약점으로 인하여 배반을 당하고 그것에 격정적인 분노에 찬 보복을 가하고 다시 역보복을 당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에 불행의 악순환을 가져왔다. 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패륜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오만함에 빠져 작은 신처럼 교만하게 행동하는 삼손에게 그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삼손과 이스라엘 배후에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이 그 주인공이다. 성서의 세계에서 인간의 영웅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삼손은 결국 죽음으로써 그에게 예언된 소명을 수행하고 참된 승리를 가져온다. 성서는 역사 속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숨겨진 손의 행방을 알고 그것에 순응하는 자 그가 진정한 영웅임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인간적 영웅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육신의 눈이 멀고서야 영안이 열린 삼손에게 우리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2009-07-07

[성서인물열전] 욥, 하나님을 깨달은 자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개작하여 영화로 만든 '밀양'은 욥기가 그려내고 있는 동일한 문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밀양'의 영어식 표기는 'Secret Sunshine'인데 '신의 일식(日蝕)'을 상징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능한 신이 만든 이 세상에 악은 존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의 심연에서 그 고통의 이유를 물을 때 종적을 감춰 버리는 신의 이야기. 영화 '밀양'보다도 더 진지하게 인간의 고난 문제에 대해 지혜를 찾고 있는 작품이 바로 '욥기'이다. '욥기'가 던지고 있는 화두는 이것이다. "왜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가?" 그런 점에서 밀양의 주인공 여자의 경험은 욥 이야기의 변주(變奏)이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의로운 자였다. 이런 욥에게 다가온 시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가뭄과 재해로 인해 소유하고 있던 물질을 다 잃어버렸고 하루아침에 그의 열 자녀가 몰살되었고 게다가 자신의 온 몸에 창병이 돋아났다. 그 뿐인가 아내가 "여호와를 저주하고 죽으라"는 폭언을 남기고 떠나 버렸다. 욥은 잿더미 위에 앉아 깨진 기왓장으로 가려운 몸을 긁으며 이 모든 일에 자신의 무죄함을 하나님께 탄원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의 이유와 당하는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변론과 항의와 함께 탄식을 쏟아낸다. "어찌하여 나에게서 얼굴을 돌리시고 이 몸을 원수로 여기십니까?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며 보존하신다고 하는 재천명이었다. 창조주와 역사의 주권자 앞에서 욥의 질문인 "왜 내가 고난 받아야 하는가?"는 의미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의 우주적 계획 속에 고통의 신비 또한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욥은 정의로운 하나님의 신비스러움을 한낱 피조물인 자신이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고난의 의미를 안다면 그는 신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욥은 우리 인간이 삶의 의미와 신비를 파헤쳐 그 궁극적 의미를 깨닫기에는 한계가 있는 존재인 것을 이야기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에도 그것을 스스로 감내하려는 자세로 살아갈 때 그 고통이 하나님과 인생의 신비에 다가가는 창(窓)이 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2009-06-23

[성서인물열전] 바울, 그리스도교의 적서 복음전도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부활하신 주님과 바울 사이에 오간 이 짧은 대화가 기독교의 새 장을 여는 사건이 될 줄은 바울도 몰랐을 것이다. 다메섹에 있는 크리스천 공동체를 궤멸하기 위하여 기세등등하게 가는 도중 바울은 홀연히 비친 강렬한 빛을 보고서 땅에 엎드러졌다. 기실 바울은 주님을 핍박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왜 핍박하느냐고 바울을 추궁하신다. 이것은 바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 충격 때문이었는지 바울은 사흘 동안 시력을 잃었다. 율법이 저주한 십자가에 달린 그가 그리스도라니. 그렇다면 그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크리스천들의 증언은 참된 것이 된다. 율법을 향한 열정 때문에 핍박의 길을 떠났던 바울에게 이 사건은 그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플라톤의 '국가론' 7장에 보면 '동굴 비유'가 나온다. 어릴 때부터 의자 위 사슬에 묶여 옴짝달싹 못한 채 동굴 깊숙이 갇혀 지내는 죄수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동굴 안으로 희미하게 스며든 빛에 비추인 그림자가 실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온갖 고통을 무릅쓰고 사슬을 풀고서 좁디좁은 동굴을 기어 올라가 이글거리는 태양을 보고서 잠시 눈이 먼다. 그는 진리(이데아)를 만난 것이다. 희열과 감격에 찬 나머지 자신이 본 것을 동료 죄수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힘겹게 동굴 세계로 다시 돌아와 전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협박과 폭력뿐이었다. 동료들이 볼 때에 그가 전한 것은 복음이라기보다는 동굴의 평온과 질서를 파괴하는 메시지였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그 빛의 경험을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라 했다. 바울이 보기에 율법은 동굴 벽면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율법 조문이나 교리를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인격이 실제로 내면화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이렇듯 민족과 율법조문에 갇힌 동굴의 종교(유대교)에서 모든 이들에게 열린 광장의 종교(그리스도교)로 나아가는 기틀을 마련한 이가 바울이었다. 이것이 2000년 전 부활하신 주님이 바울을 부르신 이유였다.

2009-06-16

[성서인물열전] 와스디, 최초의 페미니스트

요사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퍼스트레이디들이 있다. 한 명은 엘리제궁을 박차고 나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의 전 부인이었던 세실리아와 남성 우월주의 기질이 강한 남편인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이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베로니카 라리오가 그들이다.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 상과는 동떨어진 이들의 행보는 가십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들보다도 훨씬 오래 전에 퍼스트레이디였지만 공지영의 소설 제목처럼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성적 존엄성과 권리를 지키고자 자신의 길을 갔던 성서 속 최초의 페미니스트가 있다. 그녀는 왕후 와스디이다. 에스더서가 보도하는 와스디 항명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당대의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바사) 왕인 아하수에로가 즉위한 지 삼년에 제국의 부와 위엄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큰 잔치가 배설되었다. 그 때 왕은 주흥이 일어나서 왕후인 와스디의 아리따운 용모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신하와 백성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잔치의 여흥은 왕명에 대한 와스디의 단호한 '아니오'로 일순간 찬물을 끼얹게 되었다. 공개적 망신살을 당한 왕은 격노하여 현자들과 상의한 후 각 도에 조서를 내려 와스디를 폐위시켰다. 폐위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왕명 거역이고 또 하나는 이 일로 인하여 전국의 아내들이 남편들을 멸시할지도 모르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조처였다. 와스디가 왜 왕명을 거역했는지 성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짐작컨대 한껏 취기 오른 뭇 사내들 앞에서 한낱 노리개나 눈요기 거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주체성을 지키려 한 때문이리라. 그러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철저한 가부장적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그것의 정점에 서있는 왕에게 항명했으니 그녀의 용기가 사뭇 대단하다. 와스디는 소위 '인형' 같이 살아가는 왕후가 되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했던 무소의 뿔처럼 당찬 여인이었다. 여성과 남성 사이 성의 차이를 인식하되 성을 차별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지 않는 사회가 희망 있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와스디의 '아니오'가 더욱 비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성차별 없는 세상에서 우리의 딸들이 마음껏 나래를 펼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의 한결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리라.

2009-06-09

[성서인물열전] 아브라함, 최초의 이민자

인류 문명의 발원지였던 수메르에 인접한 갈대아의 우르를 떠나 성서의 무대가 된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한 이가 있었다. 그의 발길이 후일 고대 근동의 경계 너머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민족적 종교적 지도를 바꾸어 놓을 줄이야 누군들 생각했겠는가. 그는 야훼 하나님의 단출한 명령에 몸을 맡긴 채 당대의 가장 고색창연했던 문명의 도시를 떠나 정처 없는 여정을 떠났다. 그는 믿음의 여정 후 야훼 하나님이 약속한 바대로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다름 아닌 모든 이민자들의 아버지가 된 아브라함이었다. 이민자들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선조였던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의 후예들은 각각 다른 경로와 신분으로 이 땅에 도착하였으니 미국의 이민사는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한 패밀리의 이민사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세 갈래로 나뉘어져 각각의 다른 인종을 형성하여 이 땅을 찾았을 때 그들이 통과한 관문은 각기 달랐다. 야벳의 후손인 유럽계 이민자들이 간단한 입국 절차를 거치기 위해 검문소가 설치된 엘리스 섬(뉴욕) 거친 바다 항해와 동물처럼 쇠사슬에 묶인 채 온갖 학대 가운데 겨우 살아남은 함의 후예인 흑인 노예들이 도착한 설리번 섬(남부 캐롤라이나) 셈의 후예였던 아시아 이민자들이 거쳐야 했던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던 에인절 섬(샌프란시스코). 최초의 이민자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미국 이민사가 보여 주듯이 오늘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의 기치 아래 숨겨진 어두운 미국 이민사에서 우리보다 앞서 낮선 이 땅을 찾은 이민 선조들의 이루지 못한 꿈과 애환을 본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 이라고 외쳤던 그 꿈이 오바마의 시대를 연 것처럼 코리언-아메리칸 이민자로서 우리가 꾸는 꿈들이 우리 이민현장의 새 역사를 열 것이다. 첫 아프리칸-아메리카 대통령의 외침인 "미국의 변화 세계의 변화"에 담긴 비전속에서 아득한 옛날 변화와 비전을 좇아 갈 바를 알지 못하고서 여정을 떠난 아브라함의 꿈을 본다. 엘리스 섬과 설리번 섬과 에인절 섬 사이를 나누었던 억압과 차별의 바다를 메워 울타리 없는 하나의 육지로 만드는 꿈. 그 꿈이 모든 민족의 아버지였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으리라.

20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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